열 살의 기억이 서른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빛은 따뜻했지만 진료 의자는 아직 차가웠습니다.

접수대 너머로 그분의 손이 먼저 보였습니다.

꽉 쥔 손. 가방 끈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감아쥔 손가락 끝이 약간 희었습니다.

앉을 때도 의자 가장자리에만 걸쳤습니다.

목을 세운 채 정면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예약을 잡는 데만 두 달이 걸렸다고 하셨습니다.

서른두 살. 마지막으로 치과에 오신 게 스물한 살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제대로 마취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치료가 시작됐습니다.

통증이 있었지만 치료는 계속됐습니다.

어린 몸이 그걸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 뒤로는 치과 특유의 냄새만 맡아도 몸이 굳는다고 하셨습니다.

소독약의 날카롭고 서늘한 냄새.

금속 기구가 트레이에 닿을 때의 얇고 딱딱한 소리.

의자가 뒤로 서서히 젖혀지는 순간의 그 압박감.

이 셋 중 하나만 있어도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고 하셨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상태에서.

저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진단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그 순간 알았기 때문입니다.

“원장님… 오늘 꼭 치료해야 하나요?”

진료 의자에 앉으신 직후, 그분이 물으셨습니다.

목소리는 낮았고, 끝이 약간 떨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치과 공포증을 예민함의 문제로 보십니다.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들 잘 오는데 저만 이렇게 무서운 건가요’라고 물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말 안에는 자책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공포증은 성격이 아닙니다. 학습입니다.

뇌는 강한 통증을 위험 신호로 저장합니다.

그 신호가 어릴 때 새겨졌다면,

몸이 작고 치과 의자가 크게 느껴지던 나이에 예고 없이 통증이 왔다면, 수십 년이 지나도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이건 의지가 약한 게 아닙니다.

저는 엑스레이를 바라보면서 속으로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충치가 어느 깊이까지 들어갔는지.

신경에 얼마나 가까운지.

그러면서 동시에 다른 계산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어디까지 진행할 것인가.

어느 지점에서 멈추는 것이 이 분께 더 맞는가.

치료 계획보다 신뢰 계획이 먼저여야 하는 날이 있습니다.

마취는 술기가 아니라 약속입니다

많은 분들이 마취 주사 자체를 두려워하십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마취가 제대로 될지 믿지 못하는 것이 두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 두 가지는 다릅니다.

마취는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약이 조직에 스며들어 신경 전달을 차단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 시간을 서두르면,

마취가 채 자리를 잡기 전에 치료가 시작되면, 환자는 느끼십니다.

조금씩. 그리고 그 조금이 기억에 쌓입니다.

마취는 단순히 약을 주입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침이 조직에 닿기 전에 잇몸을 먼저 잠재우는 과정이고, 주입 압력을 조절하는 판단이고, 약이 충분히 작용했는지 확인하는 대화입니다.

저는 이 과정을 조금 더 정밀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반 의원에서 주로 쓰는 방식보다 한 단계 위의 무통마취 시스템을 들여놓았습니다.

주사 압력을 기계가 일정하게 조절해 주기 때문에 사람의 손 힘에 의한 순간적인 압력 변화가 줄어듭니다.

그 차이가 환자분께는 ‘찌르는 느낌’이 덜한 것으로 전달됩니다.

초등학교 때 그분이 겪으셨을 일이 아마 그것이었을 겁니다.

압력이 갑자기 높아지는 순간, 아직 마취가 덜 된 조직에 닿는 감각.

저는 그 순간을 최대한 만들지 않으려 합니다.

마취 전에는 반드시 표면마취 연고를 먼저 바릅니다.

잇몸 점막의 감각을 먼저 둔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다음에는 기다립니다.

5분, 때로는 그 이상.

그리고 반드시 확인합니다.

저린지, 감각이 남아있는지. 환자분이 직접 느끼시는 것을 말씀해 주실 때까지 시작하지 않습니다.

Q. 치과 공포증이 있으면 마취도 잘 안 된다고 하던데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극도로 긴장하면 신체 반응이 마취 효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취 자체가 안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더 충분히, 더 천천히, 더 여유 있게 접근하면 됩니다.

긴장이 있다는 걸 알고 시작하면 애초에 여유를 더 두게 됩니다.

치료 후가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치료가 끝난 직후, 저는 바로 자리를 뜨지 않습니다.

의자를 세우고, 그분 옆에 서서 묻습니다. 지금 어떠세요. 아픈 데 있으세요. 단순한 인사가 아닙니다.

마취가 충분히 유지되고 있는지, 치료 부위에 예상치 못한 자극이 남아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그분이 “괜찮아요”라고 하실 때까지, 저는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귀가하신 뒤, 마취가 완전히 풀릴 시간이 됐을 즈음 전화를 드립니다.

아프지 않았다는 경험, 끝나고도 연락이 왔다는 경험. 그 기억이 다음 번 진료실 문을 여는 힘이 됩니다.

임희철 원장의 깊은 생각

진료가 끝나고 장갑을 벗는 순간이 있습니다.

라텍스가 손끝에서 벗겨질 때 나는 작은 소리. 진료 의자가 원위치로 천천히 돌아가는 낮고 둔한 진동.

이 두 감각 사이에서 저는 방금 있었던 일을 가만히 되짚습니다.

오늘 잘한 걸까요.

이번에 신경치료까지는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충치가 신경에 가깝게 진행되어 있었지만 경계선이었습니다.

치아 두께가 아직 남아 있었고, 자발통으로 넘어가지는 않은 상태였습니다.

충치 제거와 수복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내가 너무 조심스러운건 아닐까, 하고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동시에 반대 방향의 질문도 합니다.

기다리다가 신경 노출 위험이 올라가는 건 아닐까.

재발 가능성, 남은 치아 두께, 잇몸 상태, 그리고 이 분이 앞으로 얼마나 자주 내원하실 수 있는지.

그 모든 변수를 함께 계산합니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맞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분은 치료를 마무리하는 날, 진료실 문 앞에서 잠깐 멈추셨습니다.

“처음엔 오늘 한 번만 오고 다시는 안 올 것 같았는데”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더 묻지 않았습니다.

그 문장으로 충분했습니다.

그 뒤로 정기검진을 스스로 잡아서 오십니다.

예약을 미루거나 취소하지 않으십니다.

치료가 필요한 게 생겼을 때도, 이제는 연락이 먼저 오십니다.

공포증이 사라진 게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위에 다른 기억이 충분히 쌓인 겁니다.

아프지 않았던 기억, 기다려줬던 기억, 끝나고 전화가 왔던 기억.

얼마 뒤 그분이 지인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역시 치과 공포증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치료는 치아를 회복시키는 일이지만, 진료는 그분이 다시 오실 수 있도록 설계하는 일입니다.

집에서 시작하는 작은 변화

그분이 나가신 뒤를 생각합니다.

버스를 타고 가람마을 쪽으로 돌아가셨겠지요.

창밖으로 운정의 하늘이 흘러갔을 겁니다.

마취가 아직 남아 있어서 입안이 낯설게 느껴지셨을 겁니다.

그래도 아프지 않다는 것, 그게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날 저녁, 마취가 완전히 풀리고 나서도 아프다는 연락이 없었습니다.

데스크에서 먼저 전화를 드렸고, 괜찮다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집에서 하실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치료와 직접 관계없어 보이지만, 이 두려움과 연결된 것들입니다.

하나는, 치료 후 입안을 억지로 계속 확인하지 않으시는 겁니다.

혀로 치료 부위를 반복해서 누르거나 건드리면 자극이 됩니다.

불안해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압니다.

그런데 그 습관이 감각을 더 예민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그 자체를 몸이 배워야 합니다.

또 하나는, 자기 전에 턱에 힘이 들어가 있는지 느껴보시는 겁니다.

긴장이 몸에 오래 남아 계신 분들은 주무시는 동안 이를 갈거나 무는 경우가 있습니다.

턱을 살짝 내리고 윗니와 아랫니 사이를 벌린 채로 눈을 감아보시는 것. 처음엔 어색하지만 조금씩 몸이 기억합니다.

그리고, 다음 예약을 달력에 직접 적어두시는 것.

작은 행동입니다.

하지만 ‘나는 다시 간다’는 결정을 스스로 몸에 새기는 방식입니다.

두려움은 한 번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른 경험이 그 위에 쌓이면서 천천히 옅어지는 겁니다.

오늘 그 첫 번째 장이 넘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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