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후 햇살이 진료실 창을 비스듬히 넘어올 무렵, 한 분이 조용히 체어에 앉으셨습니다.

“이 치아, 빼야 하는 거 아닌가요?”
몇 해 전 신경치료를 받은 아래쪽 어금니였습니다. 식사 중 한쪽으로만 씹는 습관이 생긴 지 오래되셨다는 분이었습니다. 반대쪽 볼에는 무의식 중에 음식을 보내지 않게 된 흔적이, 씹는 면의 닳음 차이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신경치료를 받은 치아는 죽은 치아라고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빼고 임플란트를 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라고 생각하고 오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바로 답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모니터를 켭니다. 사진을 띄웁니다. 치아 뿌리 끝의 경계선을 따라 시선이 천천히 내려갑니다.
그 치아는 아직 거기 서 있었습니다.


많은 분이 신경치료를 받은 치아는 수명이 끝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다. 신경을 제거했으니 이미 죽은 것이고, 언젠가는 뽑아야 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으시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실제로 신경치료 후 치아가 약해지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약해진 것과 끝난 것은 다릅니다.
시간을 조금 되감아 보겠습니다. 신경치료라는 것은 치아 내부의 감염된 조직을 제거하고, 그 빈 공간을 채워 넣는 과정입니다. 감염이 더 깊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치료이고, 이 과정을 거치면 치아 내부로 영양을 공급하던 혈관도 함께 사라집니다. 나무로 치면 뿌리에서 물이 올라오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치아가 건조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변하기도 하고, 같은 힘을 받아도 이전보다 잘 견디지 못하게 됩니다.

이 분의 사진을 보면서, 저는 한 가지를 더 확인했습니다. 뿌리 주변 뼈의 상태였습니다. 사진 한 장만으로 바로 판단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 치아는 뿌리 끝 경계가 미세하게 흐릿했습니다. 각도를 달리해 한 장을 더 촬영했습니다. 그 한 장이, 이 치아를 살릴 수 있는지 없는지의 경계를 보여주었습니다.
뿌리를 감싸고 있는 뼈가 아직 충분히 남아 있었습니다. 신경치료 후 시간이 지났지만, 뿌리 자체의 구조는 흔들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신경치료 후에도 오래 쓸 수 있는 경우
치아가 제 기능을 유지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뿌리가 뼈 안에 단단히 잡혀 있을 것, 그리고 남아 있는 치아 구조가 씹는 힘을 버틸 만큼 충분할 것. 이 두 가지가 갖춰져 있다면, 신경치료를 받은 치아라도 적절한 보호를 씌워 수년에서 십수 년까지 쓸 수 있습니다. 물이 오르지 않는 나무라 해도, 기둥이 단단하고 지지대를 잘 세우면 오래 서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Q. 신경치료 후 크라운을 꼭 씌워야 하나요?
대부분의 경우 그렇습니다. 신경치료를 받은 치아는 내부가 비어 있고, 수분 공급이 끊겨 취약해진 상태입니다. 씹는 힘이 그대로 전해지면 치아가 세로로 갈라질 수 있습니다. 크라운은 그 힘을 분산시켜 치아가 쪼개지는 것을 막아줍니다. 다만, 남아 있는 치아의 양과 위치에 따라 크라운의 형태와 범위가 달라집니다. 모든 경우에 같은 방식이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빼는 것이 나은 경우
반대로, 뿌리 주변 뼈가 이미 많이 흡수되었거나, 치아에 세로 방향의 균열이 있거나, 남은 치아 구조가 크라운을 지탱하기에 부족한 경우에는 살리는 것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습니다. 억지로 유지한 치아가 결국 더 큰 감염이나 주변 뼈 손실로 이어지는 경우를 저는 여러 번 보아 왔습니다. 어떤 치료든 되돌릴 수 없는 지점이 있습니다. 한 번 깎인 뼈는 다시 차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판단이 무거운 것입니다.
Q. 신경치료 받은 치아가 또 아프면 무조건 빼야 하나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재신경치료라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이전에 채워 넣은 재료를 제거하고 내부를 다시 소독한 뒤 새로 충전하는 과정입니다. 다만 이것이 가능하려면 치아 자체의 구조가 남아 있어야 하고, 뿌리에 금이 없어야 합니다. 가능한 경우와 불가능한 경우의 경계는, 사진과 직접 확인을 겸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입니다.
이 분의 치아를 살릴지, 보내줄지 — 그 결정은 제가 혼자 내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크라운을 씌워 유지하는 길과, 발치 후 다른 방법을 찾는 길을 함께 놓고 설명드렸습니다. 치아를 얼마나 더 쓰고 싶은지, 앞으로의 관리에 얼마나 시간을 쓸 수 있는지 — 그것은 환자분의 삶 안에서 정해지는 문제였습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고치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남겨두는 일에는 서투릅니다.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 가장 깔끔한 해결처럼 보입니다. 낡은 가구를 버리고 새 가구를 들이는 것, 헌 옷을 정리하고 계절마다 새 옷을 거는 것. 그런 방식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오래된 것을 손질해 계속 쓴다는 선택이 때로는 비효율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것들은 새것으로 대체할 수 없습니다. 오래 앉아 몸에 맞게 눌린 의자처럼, 다른 것으로 바꾸면 편할 것 같지만 실은 그 자리에 그것이 있어야만 맞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처음보다는 약해졌어도, 그 자리를 오래 지켜온 것 자체가 가치인 경우. 새것이 더 단단할 수 있지만, 그 자리의 맥락까지 가져오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쉽게 빼지 않습니다. 남겨둘 수 있는지를 먼저 끝까지 따져봅니다. 그것이 때로는 더 느리고, 때로는 더 번거로운 길이라 해도 한 번 사라진 자리는 원래의 것으로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사진 한 장을 한 번 더 들여다봅니다.

야당역 쪽에서 오셨다던 그분은 결국 크라운을 씌우는 쪽을 선택하셨습니다. “한번 더 써보겠습니다”라는 말이, 그날 진료실에서 들은 가장 조용한 결심이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면서, 예전에 신경치료를 받은 치아가 하나쯤 떠오르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혀끝으로 어금니 쪽을 한 번 훑어보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 치아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아직 쓸 수 있는 것인지 — 궁금하시다면 사진 한 장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경치료 후의 치아를 오래 쓰려면, 정기적으로 상태를 확인하는 것, 씹는 힘에 맞는 보호를 갖추는 것, 그리고 변화가 생겼을 때 너무 늦기 전에 한 번 보여주시는 것 — 이 세 가지가 기본입니다.
자연치아는 한 번 빠지면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 서 있다면, 얼마나 더 함께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볼 일입니다.


운정 뿌리사랑치과의원 안내
위치: 경기도 파주시 와석순환로 70, 신운정프라자2 3층
예약: 031-946-2871
반드시 예약 후 내원해 주세요.
진료시간 안내
오전 9:30~오후 6:30
화요일 야간진료 오후 9:00
토요일 오전 9:30~오후 2:00
수요일,일요일,공휴일 휴진

본문의 진료 사례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의료법에 따라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각색하였습니다.
※ 치료 결과는 개인의 잇몸 상태·골밀도·유지 습관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